약을 ‘치료’가 아닌 ‘예방’ 목적으로 먹는다는 건 언제나 논란을 낳는다. 질병 이력이 없는 사람에게 약을 권하는 순간, 그 행위는 의학적 근거와 윤리적 판단의 경계에 놓인다. 실제로 예방적 약물 복용은 일부 질환에서 생명을 구하기도 하지만, 무분별한 사용은 오히려 건강을 해칠 수 있다.
이 글은 예방적 약물 복용이 정당화되는 명확한 조건, 위험이 더 큰 경우, 그리고 의학이 권하는 ‘예방의 균형’을 정리한다. 끝까지 읽으면 약을 시작해야 할 때와 멈춰야 할 때를 스스로 구분할 수 있을 것이다.
예방적 약물 복용이 정당화되는 핵심 원칙
질병이 없는데도 약을 복용하는 행위는 오직 ‘이득이 해보다 클 때’만 정당화된다. 이를 판단하는 기준은 세 가지다.
① 발생 위험이 높을 것.
예방 약물의 첫 조건은 개인의 절대 위험도가 충분히 높아야 한다. 예컨대 10년 내 심혈관질환 발생 확률이 20% 이상인 고위험군에서만 스타틴 복용이 근거를 가진다.
② 예방 효과가 명확히 입증될 것.
아스피린, 비스포스포네이트, 항바이러스제 등은 임상시험에서 명백히 ‘질병 발생률 감소’를 증명한 경우에 한해 인정된다.
③ 부작용이 이득보다 작을 것.
약물 복용으로 인한 출혈, 간독성, 대사 이상 등의 부작용이 예상되면 정당화 근거가 약해진다. 특히 무증상 인구에서는 안전성이 우선이다.
예방 약물이 실제로 유효한 사례
모든 예방적 복용이 나쁜 것은 아니다. 다음과 같은 경우는 근거가 충분해 정당화된다.
① 저용량 아스피린 – 고위험 심혈관 예방
미국심장협회(AHA)는 40~70세 성인 중, 10년 내 심근경색 또는 뇌졸중 위험이 높은 사람에게 저용량 아스피린(75~100mg/일)을 고려할 수 있다고 제시했다. 단, 출혈 위험이 낮아야 한다.
② 스타틴 – 동맥경화 위험군
LDL 콜레스테롤이 130mg/dL 이상이거나 당뇨, 흡연, 고혈압 등 위험인자가 있는 성인은 질병 이력이 없어도 스타틴 예방 투여로 심혈관 사건을 25~30% 줄일 수 있다.